1974년 교수 99명 통일교 지지 광고에 맞선 탁명환의 반박
신흥종교 연구가 탁명환이 1974년 교수 99명의 통일교 지지 성명 광고에 반박하고 참여 경위를 확인했던 과정이 소개됐다.
탁명환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 재학하던 1974년 전국 주요 대학 교수 99명의 이름으로 발표된 ‘통일교회 활동에 대하여’라는 광고를 접했다. 광고는 통일원리를 찬양하고 통일교가 41개국 200만 신도를 둔 세계적 교회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명단에는 기독교인 교수도 적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교회는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신아일보는 그해 11월 28일 교수들 다수가 이름을 도용당했거나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명단에 포함됐다고 주장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같은 날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관계자들이 신문사를 찾아가 기사 취소를 요구하며 약 한 시간 항의했고, 매일경제 등은 이들이 윤전기를 부수겠다는 취지의 폭언을 했다고 전했다.
탁명환은 신흥종교연구소 명의로 12월 2일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통일교가 정통 기독교가 아니며 이미 한국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규정됐다고 밝혔다. 교수들을 직접 면담한 결과 통일교인이거나 적극적인 지지 세력은 99명 중 10여명에 불과했다고 설명하고, 학자들이 신흥종교 집단에 이용되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성명 발표 뒤 탁명환은 남대문경찰서에서 두 시간 조사를 받은 뒤 대전으로 향했다. 그는 일기에 신아일보와 동아일보만 성명을 기사로 다뤘고 나머지 신문은 침묵했으며, 처자식을 남겨 두고 도망치듯 떠나는 마음이 괴롭다고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 해외에서도 통일교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중앙일보는 1975년 2월 프랑스에서 통일교를 떠난 청년 4명과 자녀가 납치됐다고 주장하는 부모 60여명이 ‘가정의 가치와 개인을 보호하는 협회’를 결성해 통일교를 규탄했고, 르몽드 등 현지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고 전했다.
교수 99인의 광고는 당시 일간지 지면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통일교가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는 인상을 만들었다. 탁명환은 명단에 오른 교수들의 실제 의사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광고의 대표성과 진실성을 따져 물었다.
신아일보 보도 직후 관계자들이 신문사에 찾아가 강하게 항의한 사건은 반박 보도가 쉽지 않았던 당시 분위기를 보여 준다. 탁명환의 일기 역시 성명 발표 직후 경찰 조사를 받고 가족을 남겨 둔 채 이동해야 했던 압박을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의 반대 운동 사례에서는 통일교를 떠난 청년들과 자녀 문제를 제기한 부모들이 함께 단체를 만들었다. 국내의 교리 논쟁과 별개로 해외에서도 개인과 가족의 피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조직화됐다는 점이 당시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D.Gu--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