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행 뒤 1년 8개월 국제 구명 활동
우크라이나에 억류됐던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행이 결정되기까지 탈북민과 교계·인권단체가 1년 8개월간 벌인 보호 요청과 설득 과정이 확인됐다.
우크라이나 수용소의 북한군 포로 두 청년에게 한국행 소식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아빠’의 편지였다. 탈북 군인 출신 장세율(57) 겨레얼통일연대 대표가 두 청년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며 쓴 지난 10일자 편지다. 추석을 앞두고는 지난해에 또 올해도 고향 음식이 전해졌고, 한국행 발표 9일 전인 14일에는 수용소 교도관의 회신도 받은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두 청년이 한국에 오기까지 1년 8개월 동안 장 대표는 교계·인권단체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의회, 현지 시민단체를 차례로 설득하고 현지 변호사까지 선임했다.
장 대표는 “당시 교도관이 운동도 잘하고 치료도 잘 받으며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고 알렸다. 10일자 편지에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너희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진정한 뜻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가 담겼다. 2008년 탈북한 북한군 출신인 장 대표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빠의 심정으로 편지를 썼다. 너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북한에 남았다면 자신도 전장에 끌려갔을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미안하다”고 답했다. 경기도 하남 혜림교회(김영우 목사) 성도인 그는 2014년 형제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잃은 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역해 왔다.
상황이 달라진 건 지난 3월 23일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법률지원국은 두 청년의 자유의사를 존중해 강제송환 금지 원칙에 따른 보호를 고려하겠다는 공식 회신을 보내왔다. 장 대표는 “우크라이나 정부 부처가 자유의사를 확인해 보호 등록을 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회신은 현지 변호사를 통해 낸 보호 요청에 대한 답이었다. 변호사 선임은 변호인이 있어야 한다는 우크라이나 측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장 대표는 “변호사들이 ‘자국을 공격한 군인들이라 불편다만 인권과 정의의 길이니 맡겠다’고 하더라”고 알렸다. 비용은 에스더기도운동(대표 이용희 교수)이 댔다. 장 대표는 “정말 눈물 나게 고맙다”고 했다.
교회도 기도와 헌금으로 도왔다. 지난해 10월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를 계기로 출범한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북인협) 상임대표 정베드로 목사에 자료에 의하면 에스더기도운동은 장 대표를 초청해 함께 기도하고 헌금을 모았다. 올해 3·1절에는 서울 금란교회에서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 구출 국민운동’이 출범했다. 정 목사는 “많은 기도와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북인협도 시민사회와 함께 모금 운동을 펼쳐 후원했다. 3월 회신 전까지 우크라이나 측의 답은 번번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였다. 지난해 1월 만난 우크라이나 외교·안보 분야 NGO 관계자들은 자유의사가 명확하지 않다며 협력을 미뤘다. 장 대표는 “한 명은 한국에 가겠다는데 다른 한 명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알렸다. 4월 북한자유주간 공동행사는 우크라이나 측이 포로 문제는 어렵다며 불참해 무산됐고, 7월 국방부의 답도 같았다. 11월 방한한 우크라이나 의원들은 “러시아에 붙잡힌 자국 포로가 많아 국내 여론상 쉽지 않다”는 반응이었다고 장 대표는 알렸다. 두 청년이 모두 한국에 가겠다는 뜻을 처음 밝힌 건 그보다 앞선 10월 28일 국내 취재진과의 면담에서였다.
그사이 장 대표는 함께할 곳을 하나씩 늘려 갔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자유민주연맹과 업무협약(MOU)을 맺어 현지 파트너로 삼았고, 유럽의회 인권소위원회에도 보호요청서를 냈다. 11월 북인협이 출범시킨 ‘북한군포로자유송환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사무총장을 맡아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등에 보호를 요청했다. 지난 5월 7~11일에는 대표단 6명이 키이우를 찾았다. 현지 초청장과 보안각서까지 갖췄지만 여행금지국 방문에 필요한 정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는 받지 못했다. 장 대표는 현지 기관들과 일정을 모두 잡아 둔 상태여서 약속을 깰 수 없었다고 밝혔다. 대표단은 이 일로 외교부 고발에 따른 조사를 받고 있다.
대표단은 두 청년을 만나지 못한 채 수용시설 앞에서 기도했다. 장 대표에 자료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한 장성은 “자유의사가 번복되지 않는 한 무조건 한국에 간다”면서도 적십자가 두 사람을 따로 만나 의사를 재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에 억류된 자국 포로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려는 절차다. 그는 “우리는 소말리아 해적이 아니다. 인질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게 아니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전해졌다. 한국행 전 마지막 절차는 이해관계 당사 국가가 아닌 적십자의 최종 확인이었다. 이 자리에서 두 청년의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말도 들려왔다. 장 대표는 두 청년이 스스로 내린 결정을 끝까지 지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자유의 선택은 소중다만 끝까지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행 소식은 겨레얼통일연대가 지난 21일 탈북민과 시민 35명이 쓴 편지를 국제항공우편으로 부친 지 이틀 만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로 전해졌다. 장 대표는 “며칠 뒤에 올 줄은 우리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두 청년은 현재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먼저 닿은 편지에 “언젠가 자유로운 곳에서 너희를 직접 만나는 날이 오면 아빠는 아마 많은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저 너희들을 한번 꼭 안아주고 싶다”고 적었다.
I.Do--SG